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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흩어진 마음들이 궁금해
    뭐든 먹는 송아지 2020. 10. 28. 20:40


    어쩌자고 저런 편지를 썼을까. 사진첩에서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보낼 엽서를 찍어놓은 것을 보고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편지를 쓰면서 부끄러워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전달하고는 싶어서 편지를 썼지만 내 부족한 언어의 한계와 막상 쓰면서도 이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도 가지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하는 마음이 담겨서 그런가 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하고 또 그 편지를 쓰고 몇 년이 지나면 내가 그 편지에 무슨 말을 썼는지 궁금해한다. 방금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마음이 동할 때면 편지를 쓰는 편이다. 나에게로 향하는 감정이면 그게 일기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면 편지가 된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향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초중고를 졸업할 때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왔다. 초등학교 때 처음 도전해봤는데 그 때 해보고 혼자 다짐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꼭 나와 마지막 학년을 같이 보내는 반 친구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야지. 그게 주문처럼 내 학창시절을 맴돌았나 보다. 정말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걸 해내다니. 사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러기로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내가 엽서 두 장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고 이런 내 편지 작성의 유구한 역사가 떠올라버린 것이다. 이 엽서는 내가 초중고 반 친구들에게 쓴 건 아니지만 사진을 발견하자마자 내가 지금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기기도 하고 결국 계속 마음이 맴도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요해지기도 했다.

    내가 몇 년 전에 사놓고 내 방바닥에 놓았다가 책상에 쌓아두었다가 책상 위 책장으로 진출한 책이 있다. 아무래도 내 눈앞에 보이는 책장이었다 보니 최근에 다시 그 책을 펼쳐보았는데 내가 찾아간 챕터에 예전의 내가 줄을 쳐놓은 흔적이 있었다. 아예 펼쳐보지도 않은 그냥 바닥에 쌓아놓은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언젠가의 내가 같은 페이지를 찾아와 같은 구절에 감동을 받았고 그걸 발견한 순간이 너무 마법 같았다. 이 사진도 미래의 내가 이 편지의 내용을 궁금해 할까봐 저렇게 치밀하게 앞뒷면을 모두 찍어놓은 듯 싶다. 지금의 마음이랑 너무 비슷하다. 예전에 스쳐가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다시 보니 내 안에 오래 남을 마음들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들은 어디에 정착해서 잠들어 있을까 궁금하고 가끔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이 펼쳐보는 일도 있을까 궁금하다. 버려졌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집을 정리하다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내가 받은 편지들을 보면서 추억에 젖는 일이 있곤 하니 그 사람들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요즘 들어 흩어진 내 마음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편지는 곁에 없는 사람에게 쓰는 거야.”
    그것이 사랑의 비극이야. 그리움은 늘 사랑보다 더 강하거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中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유독 편지에 관한 구절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 그리운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곁에 있거나 있지 않거나 내가 편지를 쓰고 싶은 대상은 모두 그리운 사람들인 것 같다. 타인을 가정하고 쓴 것이지만 편지에 담긴 마음이 나는 나 자신에게도 참 소중하다. 그래서 저렇게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렇지만 저 편지를 다시 보는 지금 내가 쓴 마음들을 내가 나중에 볼 수 있게 남겨놓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궁금한 것을 그냥 궁금한 채로 내버려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는 자의 앞모습은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그 자의 어깨를 붙잡아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또 문득 든다. 그냥 최선을 다해 종이에 상처를 내고 그 글자들이 그 사람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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