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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시보관함
    뭐든 먹는 송아지 2020. 10. 27. 03:16

    지난 여름 보내지 못한 채 간직해두었던 말들을 편지로 써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나 자신이 혹은 내가 보낼 편지의 대상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즉 단절을 상상할 때 비로소 못다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시작한 모임이었다. 네 번의 모임 동안 죽음과 상실에 관한 텍스트를 읽거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는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린 사람, 어떤 오해로 나를 밀어낸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관계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물론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떠올렸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꾸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내가 보냈지만 지금은 나에게 없는 내가 썼던 편지의 내용도 궁금합니다. 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의 지금은 어떤지, 그때의 나는 어떤 감정이고 모습이었을지가 궁금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편지를 보냈던 대상과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대상, 그리고 편지를 자꾸 쓰고 싶어지는 내 마음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확실히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신청을 해서 누구에게 편지를 쓰면 좋을까 본격적으로 편지를 쓰기 전 조금 고민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내가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정서적으로 지지가 되었던 상담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엄마에게 쓰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해서 살짝 비켜가볼까 했는데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모임장님이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이번 기회에 엄마한테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제안을 해왔다. 얼떨결에 그래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엄마에게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처럼 정말 엄마가 어느 순간 갑자기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던 것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엄마가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 일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로 갑자기 맞게될까 봐 줄곧 상실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 작년부터 꿈 속이나 아니면 문득 현실에서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겨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나 라는 상상이 자주 찾아왔다. 그런데 그런 상상을 자꾸 하면서도 엄마와 직접 소통하거나 대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릿속 상념으로만 그친다는 것이 조금은 답답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쌓아올려진 엄마와 나와의 아주 오래된 관계의 역사가 한 번의 편지만으로 해결될 리는 절대 없지만 언제나 상상만 하는 내 자신에게 작지만 새로운 전환점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죽기 전 언젠가 해야지 하고 되뇌기만 하다가 정말 어느 순간에는 엄마가 내 곁에 없을까 봐 그게 두려웠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중학교 때 같이 학원을 다녔던 잘 알지는 못하는 친구가 고등학교 때 죽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본 것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엄마에게 편지를 썼지만 그 친구의 이름을 어쩌면 더 많이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아는 잘 모르는 친구였지만 자꾸만 그 친구가 살아있을 적에 어땠는지, 마지막 숨을 뱉을 때 누가 주위에 있었을지, 주변의 사람들은 그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에 대해서 곱씹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지금 어떤 작가가 연재하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시 여름에 내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던 이유가 생각났다. 책을 내면서 본인에게 중요한 내면의 일을 고백해야할 것 같다는 책임감을 느꼈는데 거기서 엄마를 필연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잠시 눈물이 고였다. 내가 편지를 써야하는 프로젝트에서 누구한테 써볼까 할 때 떠오른 것도 우리 엄마였으니까. 작가가 보냈을 고뇌와 갈등의 시간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나도 내가 어떤 힘든 일을 겪거나 엄마의 상식 선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것 같거나 사회적으로 보통 용인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때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엄마를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편지를 막상 쓰려니 정말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트북 앞에서 이것저것 여러 창을 열면서 빙글빙글 돌다가 마지막 모임 전날 겨우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 감동적이거나 아름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냥 당시에 하고 싶었던 말을 줄줄 적었다. 어찌저찌 편지를 썼으나 아직 보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리 특별하게 감동적이거나 아름다운 내용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저 편지 자체를 엄마한테 아무 날도 아닌데 보낸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어색할 것 같았고, 나는 내가 적었으니까 이 편지를 쓰게 된 맥락과 감정을 모두 알고 있지만 엄마에게는 뜬금없이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은 임시보관함에 그대로 두었다. 실제로 발송해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으나 보내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아직은 보낼 준비가 안된 것 같다. 또 유예해버림으로써 핑계를 만드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꼭 마음을 전달할 수 있길. 

    같이 편지를 썼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실제로 편지를 보냈거나 보낼 예정에 있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각자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다가 이내 진지해져서 서로가 쓴 편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주 짧은 시간 만났지만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서인지 마음으로 한결 가까워진 사이가 된 느낌이었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이든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툭 터놓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다른 사람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나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편지를 완성하지 못한 사람도, 완성해서 보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한 사람도, 상대의 답까지 받은 사람도 모두 진심으로 그 마음이 닿기를 응원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늘 도처에 있지만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자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막한 이 세상을 함께 걸어나갔으면 한다. 모두들 고마웠고 언젠가 또 다시 이렇게 만나면 좋겠다. 

    이 작은 모임을 나중에 떠올리면 비가 쏟아져 꿉꿉하면서도 시원했던 여름밤이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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