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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실이 보거라
    종이비행기 2020. 8. 10. 01:35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속 복실

      오늘 드디어 네가 찍었다던 영화를 보았다. 

      , 편지는 내가 글씨를 못쓰지 않냐 내가 쓰면 속도가 더디기도 하고. 그래서 장국영한테 받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너에게 내준 방이 비어서 자리에 장국영이 들어왔다. 그때 네가 버린 테이프들을 다시 잔뜩 들고. 내가 이미 갖다 버린 다시 가져오느냐고 역정을 냈는데 그래도 꿋꿋이 들고 오더구나. 자기가 나와서 아무래도 버릴 수가 없다나 뭐라나 그렇게 궁시렁대더구나. 그러고 보니 네가 그걸 버린 되었는데 어디서 가져온 건지. 고놈은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있고 필요할 때는 눈곱만큼도 보여. 지금이야 내가 편지를 써야겠어서 붙잡아 두었다만. 옷도 여름이나 겨울이나 춥지도 않은지 숭하게 속옷만 입고 다니더만. 하여튼 없는 놈이다. 놈이 내가 지금 이렇게 자기 욕한다고 지우려는지는 몰라도 (지우려다가 그래도 거예요 찬실 -국영) 그래도 딸도 없고 찬실이 너도 없고 보잘것없는 집에 장국영 놈이라도 있으니 적적한 덜하구나. 아주 가끔 도움이 되기도 이렇게. 그러니 혹시라도 걱정일랑 말거라. 

      오늘은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장국영이 집에 박혀 있는 아냐? 날도 슬슬 추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더구나. 만두를 빚어서 만둣국을 해먹었다. 자기도 만둣국을 먹고 싶었는지 내가 같이 만두나 빚자고 하니 군말없이 집에 붙어 있지 뭐냐. 만둣국 같이 품이 들고 많이 해야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는 것이 좋으니 나도 좋았지. 빚은 사람에 따라 만두 맛이나 모양이 달라지는 것도 재밌거든. 오늘 편지를 쓰고 싶은가 했더니만 만둣국 때문이었나 . 떠나고 글씨 읽어줄 사람도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었는데 찬실이 네가 있는 하고 싶은 없는 늙은이에게 그래도 즐거웠던 아닌가 싶네.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두피를 만들고, 장국영한테 두부랑 같은 만두소에 들어갈 재료들을 사오라고 시키고, 나는 옆집에서 나눠준 시금치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반절 정도는 데쳐서 말리고 나머지는 나물로 무치거나 만두피에 색을 들이려고 남겨두었다. 만두 색이 여럿이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예쁘거든.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맛있는 만두를 빚어서 국물에 풍덩풍덩 빠뜨려 먹는 일이었네 그려. 무난하고 조용하고 그다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같은 나이의 사람들한테 이렇게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서 뭔가 해먹는 일은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다. 보통은 그냥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이것저것 해먹거든. 전에도 말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아주 열심히 한단다. 이런 늙은이 생활이 뭐가 재밌다고 자꾸 이렇게 떠들어대나 모르겠네. 누구랑 얘기할 일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마음먹고 이야기를 할라치니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있나 보다. 

      참참 그래 네가 만든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사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지루했다. 같이 영화도 보고 모르는 사람이 알겠느냐만은 졸렸던 사실이니까.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이제 나이쯤 되면 어두컴컴한 곳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진다. 심지어 영화관은 조용혀. 자지 않을 수가 없어. 그래도 꾸벅꾸벅 졸면서 봤던 몇몇 장면들은 마음에 남더라. 어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꽃들이 살아있다는 발견한 . 그리고 마지막에 하얗게 뒤덮인 길을 기차가 하염없이 달려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구나. 겨울엔 죽은 같다가도 봄이 되면 어느새 꽃을 피워내는 보면 작은 생명에게서 나오는 힘이 놀랍기도 하고 나도 덩달아 더욱 힘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원 장면은 내가 젊을 가보고 싶었던 기차여행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그때 기억이 났나 보다. 하얀 눈으로만 덮여 있는 길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뚫릴 같았는데 영화로나마 봐서 속이 후련했다. 

      그나저나 딸도 그렇고 찬실이 너도 그렇고 다들 영화를 좋아하지 못해서 안달인 거냐?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는 아니라 영화를 직접 만들기까지 하고 지금 영화 공부를 하러 멀리 떠나기까지 하지 않았니. 마음같아서는 고생스러운 영화일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으나 너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같이 모르는 사람들도 영화를 보면서 뭔가 느끼는 있는 보니 영화를 만든다는 그런 나름의 뿌듯함을 가져다 주나? 그냥 내가 이해한 걸로 치지 . 

      아이고 졸리다. 혼자 실컷 떠들어댔더니 피곤하네. 그럼 오늘은 정도로만 하고 나는 자야겄다. 가끔 안부도 전하고 그려. 그리고 내가 주변 사람들헌텐 영화 보라구 말할겨. 내가 졸았다는 시치미 떼고 영화 좋다는 얘기만 할테니 걱정 말고. 그럼 지내고 언덕 올라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서도 한국 오면 놀러와라.

     

    P.S. 찬실 , 지내시죠? , 물론 저는 찬실 씨가 지내는 알지만 인사치레로나마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 이렇게 물어봅니다. 할머니가 주민센터에서 열심히 한글공부하신 알고 계시죠? 졸업을 앞두고 계셔요. 졸업식 가장 과제로 각자 발표하는 시간이 있다나봐요. 할머니께서 발표할 시를 보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추신으로 답니다. 할머니가 처음 시를 찬실 씨가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찬실 씨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찬실 씨를 언제나 응원하는 장국영이. 

     

    물과 바람과 햇빛과

    꽃이 자라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면 자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꽃은 스스로 자라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같지만

    잎에서 줄기에서 뿌리에서 

    힘을 다해 다음 꽃을 피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는 결국 나를 다시 만나러 옵니다

    말갛고 환한 얼굴로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꽃은 무수히 많은 죽음과 삶을 품고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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