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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흘러가는 삶에서 건져올린 조각들뭐든 먹는 송아지 2021. 1. 12. 05:15
10월 초입에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과연 이걸 끝마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새 가을이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와버렸다. 매일매일 글을 조금씩이라도 쓰는 것은 예상한 대로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아프지 않고 또 너무 많이는 게으름 피우지 않으면서 무사히 도전을 끝마쳤다. 물론 종종 전에 써놓은 글들의 힘도 빌리고 너무 짬이 나지 않았을 때는 몇 번 빼먹기도 했다. 그래서 100일 도전의 후반부에는 하루에 하나의 완성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작은 토막이라도 써놓는 걸 목표로 잡았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글감이 있고,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글감인데 해야 할 말이 많아져서 뜻하지 않게 글이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글을 시작하기가 막막해질 때가 있었는데 짧게나마 써놓은 글 덕분에 글을 마무리할 힘을 조금이나마 얻었다. 어제의 내가 건네준 바통을 받고 이어달리기를 완주한 느낌이다. 이 프로젝트가 없었더라면 출발선에 서서 출발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쓴 글을 훑어보며 이것들을 과연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테마를 잡고 쓴 글이 아니고 매일매일 꽂히는 주제들을 가지고 생각나는 것들을 풀어낸 글들이 대부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제 맘대로인 글들을 보며 글 속의 순간을 그리워할지 아니면 힘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과연 시간이 흘러서 다시 읽을 때는 이미 한 켠으로 빠져나가버린 글이 어떻게 읽힐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아주 다양한 갈래길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의 무엇이 된다. 모든 선택지가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앞에 갈림길이 촤르륵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평행 세계가 있다면 지금 이 차원에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은 또 다른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른 차원의 나도 나와 맞닿는 부분이 있을까? 아예 다른 차원에서도 다른 방식이지만 비슷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건 내가 여러 길 중에서 이걸 택했다는 거다.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 100일 동안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결심인데 왜 이걸 하기로 했을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의 몸도 한 개인데 왜 이 도전에 그렇게 마음이 갔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면 나오지 못했을 글들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100일 동안 적은 글들은 그렇게 지금 이 차원의 내가 선택한 길에서 흘러나온 조각들이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겠지만 이미 내 안에 있었는데도 흘러나오지 못하고 그저 고여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시기였다면 또 다른 글들이 나왔을 것이다.
글로 적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작은 순간들을 잡아두었다. 이때에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구나, 이런 것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구나, 이런 것들을 잡아두고 싶었구나, 오래 생각하고 싶었구나 하면서 나였지만 지금의 나는 아닌 흘려보낸 조각들을 추억할 것 같다. 계속 이런 순간들을 남기고 싶다. 나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나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써버렸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나면 그때는 조금씩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도 끌어올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하면서 일상에서 생각나는 글감들을 열심히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쓸 거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맞는 길을 가고 싶다.'뭐든 먹는 송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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