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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디찬 겨울바람과 쓸쓸한 목소리
    뭐든 먹는 송아지 2021. 1. 8. 23:44

     

    정승환, 목소리(2016)

    찬바람을 최대한 맞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걸으면서 ‘아, 겨울이 좋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눈이 오는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너무 추워서 버스정류장까지만 가는 길이었는데도 잔뜩 옷을 여미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주 쓸쓸하고 그리운 목소리를 담은 곡들로 채워져있는 가수의 앨범을 듣고 있었다. 2016년 11월 발매된 정승환의 <목소리> 앨범이다.  

    누군가 사계절 중에 어떤 계절이 가장 좋냐고 물어보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무난한 봄 가을을 번갈아 말하곤 했다. 덥고 습한 여름과 춥고 싸늘한 겨울은 언제나 후보지에서 당연히 제외되었다. 그런데 앨범을 들으며 쓸쓸한 겨울 거리를 걷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지만 그건 막연히 겨울이 너무 좋다는 신나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단순히 기온으로만 감각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 계절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견뎌내려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겨울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불가피하지만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가 너무나도 겨울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어떤 계절보다도 고독하지만 혼자 걸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가 지나온 것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계절이라 좋았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서야만 맞을 수 있는 겨울의 속성처럼 우리는 언제나 따뜻하거나 변덕스럽거나 덥거나 쌀쌀한 시간을 통과한다. 그리고 결국 밖으로는 모든 게 얼어붙지만 한편으로는 안의 것들을 포근히 품는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앨범을 듣던 그해 겨울에 특히 더 그리운 것들이 많았고 지나온 것들을 생각했고 어떻게든 견뎌내보려고 했다. 그런 시간들이 응축되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겨울이라는 고독한 계절이 좋아질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앨범에는 총 6개의 곡이 실려 있는데 모든 곡들이 외로움을 감내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쓸쓸히 눈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든 걸 다 떠나보내고 무너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을 간신히 붙들고 홀로 견디는 태도가 가사와 목소리에 담겨 있다. 지나온 수많은 것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처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 여기 실린 노래들은 슬프고 아프다. 그렇지만 단순히 좌절하고 아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라는 앨범 이름처럼 결국엔 가늘고 희미할지 모르겠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다짐도 함께 한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와 함께 막막하거나 외로운 계절을 어떻게든 견뎌내겠다는 희망도 생기는 듯하다. 그가 눈 위를 걸어오면서 만들어낸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서 나도 그런 다짐을 천천히 마음에 새긴다. 봄이 되면 그 발자국은 흔적없이 사라지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의미가 있을 테다. 

    이맘때쯤 항상 이 앨범이 생각난다. 정승환의 다른 앨범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이다. 가슴에서 소리를 끌어모아 간절하고 애타게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면 겨울이 찾아온 게 물씬 느껴진다. 겨울마다 이 노래들을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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