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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자피자
    뭐든 먹는 송아지 2020. 10. 13. 19:50

    완성된 감자피자

    한동안 바빠서 집에 붙어 있을 시간 없이 밖을 쏘다녔는데 오늘은 간만에 집콕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생긴 좋은 습관이 있다. 아마 다들 그렇겠지만 집에서 요리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것.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건 돈도 많이 들고 쓰레기도 너무 많이 나온다. 요리를 하는 건 사실 정말 귀찮은 일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동시에 그 메뉴에 필요한 재료가 냉장고에 있는지 살펴보기도 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요알못이던 시절(물론 지금도 요잘알은 아니지만)에는 레시피에 적혀있는 재료가 하나라도 없으면 조금 짜증이 났었더랬다. 그렇다고 배가 고픈데 아예 음식을 해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찔끔씩 레시피에 있는 재료들을 빼고 요리를 했는데 그러면서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메인 재료가 아니라면 한두 개 정도는 빠져도 된다는 걸 알았다. 

    오늘은 몇달 전 유튜브에서 보고 두어 번 해먹은 감자피자를 다시 해먹었다. 몇 번 해보니 대충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어서 이제 그냥 내 마음대로 재료를 넣어 먹기로 했다. 냉장고 파먹기라고 불리는 그것을 실천했다. 오늘 만들어 먹은 감자피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 포테이토 피자는 아니다. 도우가 아래 깔려 있고 감자 슬라이스와 베이컨, 그리고 다른 토핑들이 잔뜩 뿌려져 있는 피자가 아니고 이건 도우 자체가 감자인 피자다.


    먼저 감자채를 싹둑싹둑 썰어서 소금을 조금 뿌려서 재워둔다. 이게 바로 감자 피자의 도우가 될 것이다. 내가 본 유튜브 영상에서는 다른 걸 넣지 않았는데도 감자채들이 알아서 잘 붙어서 한 덩이가 되어 잘 뒤집히던데 나는 몇 번을 해봐도 잘 되지가 않아서 어차피 입으로 들어갈 거 대충 감자채를 흩뿌려놓은 다음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만 굽는다. 

    기름을 후라이팬에 둘러서 감자채를 피자 모양이 되게 잘 놓은 다음에는 한 면이 익을 때까지 조금 기다린다. 평소에는 카놀라유를 썼는데 오늘은 올리브유를 써봤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썰어 놓은 재료들을 투하하면 된다. 요즘 집에서 건강하게 먹고 싶어서 그리고 환경과 채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가능하면 비건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래서 감자채 도우에 올라갈 재료들은 모두 채소를 올렸다! 볶음우동을 위해 쟁여둔 양배추, 아빠가 야채바구니에 5분의 1 정도 남겨둔 양파, 냉장보관해야 하는지 모르고 실온에 놔뒀다가 간신히 구출한 블랙 올리브, 마트에서 사왔지만 상할까봐 베란다의 화분에 심어둔 파 한쪽, 저번 학기 수업에서 길렀지만 반쯤 포기했다가 최근에 다시 살린 루꼴라, 바빴던 사이에 아빠가 어디선가 가져온 치커리 같지만 확실하지 않은 어떤 채소와 표고버섯. 이렇게 각자의 사연이 있는 재료들을 다듬는 게 재밌다. 요리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게 요리의 재미라면 재미인 것 같다. 소박하지만 직접 수확한 채소도 있어서 마치 방금 텃밭에서 따 온 기분도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은 케첩, 소금, 후추로 했다. 케첩은 감자 익은 면 반대쪽 면에 발랐고 그 위에 방금 말한 모든 재료를 때려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올라오는 증기로 채소들을 익혔다. 다 채소들이라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먹을 수 있다. 

     

    여러 사연을 가지고 있는 채소들

    너무 재료를 많이 넣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 야채는 썰 때 양이 많은 듯 해도 열을 가하면 숨이 금방 죽는다. 아래는 오래 익혀서 바삭한 감자가 식감을 책임져 주었고 위는 양배추나 양파가 아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올리브나 루꼴라 향 그리고 케첩이 정말 잘 어울리고 소금과 후추 간이 심심하지 않게 딱 적당했다. 감자가 한 알밖에 안 남아 있어서 조금 양이 적은 감이 있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한끼였다. 보통은 두 알을 쓴다. 

    집에 있는 귀엽고 싱싱한 재료들을 고르고 하나하나 다듬는 과정부터 그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것까지 생각하면 요리는 뿌듯하고 즐거운 여정이다. 설거지는 아주 약간 귀찮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다면 더욱 재미있고 보람차다. 내가 즐겨 가는 비건 식당 이름이 생각난다.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요리를 놀이처럼 재밌게 하면서 여러가지 톡톡 튀는 메뉴와 프로젝트로 찾아오는 놀이터지기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기에 조금이나마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걸지도? 앞으로 즐거이 놀면서 더 많은 나만의 요리법을 발견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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