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아지 2022. 1. 1. 03:27

올해는 정말 말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냥 힘에 부쳐서 이젠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일어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횡단보도 앞에서, 혹은 어딘가 앉을 곳이 있을 때 조금씩 쪼그려 앉아있었다. 버겁고 지쳤다. 이젠 더 이상 무엇을 해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근데 또 그만하기가 두려웠고 그만할 수가 없었다. 뭘 그만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힘든 건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맞는 건가? 왜 이 감정을 느끼고 있지? 이건 뭘까? 어느 날은 무지 괜찮고 어느 날은 아주 괜찮지 않았다.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불안하고 집중이 안 되고 어떤 걸 해도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혼란과 방황과 지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자꾸 나를 끌고 내려가는 모래구덩이에서 손을 뻗어서 소리를 지르면서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어디에 청해야 할지 그 손을 어디로 뻗어야 할지 그리고 뻗으면 잡아줄 사람은 있을지 마음이 자꾸 무너지고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가 않았다.

버스를 놓칠까봐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면서, 버스에 앉아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 지하철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저 멀리서 빨간불이 초록불로 늦게 바뀌기를 바라면서, 다리에 기대 개천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폴짝 뛰어야 하는 돌다리를 건너면서,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는 사이 놀이터 앞 벤치에서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또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찾아와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안절부절하고 방황했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분명 이유가 있긴 있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소용돌이처럼 섞여 버려서 어디서부터 그 바람을 멈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내 마음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울고 싶은 기분인데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은 적도 많았고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 적도 많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가 무얼 잘못했던 건지 나는 왜 이런 상황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해였다. 분명 웃기도 하고 즐거운 일들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올해를 돌이켜보면 주저앉아 멍을 때리거나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 드는 날들이 많았다. 가만히 앉아 허공을 보며 공허하게 있는다거나 가만히 누워 심장이 뛰는 걸 잦아들기를 기다린 시간들. 일기를 쓰면서 끄적끄적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가는 그날의 감정들을 적어갔던 시간들.

매번 얼굴을 보면서 눈을 마주치는 사람과 말을 하고 싶었다. 나란히 서서 발걸음을 맞추며 걷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어떤 말을 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냥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 같다. 그냥 그 시간에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일 똑같은 거리, 똑같은 길을 시간에 맞추려고 분주하게 뛰거나 혹은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 터덜터덜 걸으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였다. 그건 뭐였을까. 내가 큰 걸 바란 것만 같은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자신감이 없어지고 작아지고 슬퍼졌다.

그냥 너무너무 화가 나고 답답한데 소리를 지를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내뱉을 수가 없어서 혼잣말을 하면서 깊은 숨을 내쉬며 자꾸 걷고 걷고 또 걸었던 시간들. 자꾸 스스로에게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던 시간들.

자꾸 자꾸 툭툭 사건들이 터지는데 그걸 내가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깊은 숨을 많이 쉬었다. 숨쉬는 걸 느끼려고.

그냥 그냥 잠겨 있고 싶었다. 고요한 밤 혹은 물 속에. 누군가 나를 끌어올려 줄 때까지. 아주 잠시만.

환상과 기적은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연말에는 내가 산타가 되기로 했다. 멋지고 쿨한 산타 ♥ 나눠주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 줄리 앤 줄리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You saved yourself” 나도 내가 나를 구원하고 싶다.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가끔씩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을 좀 사랑하는 듯싶다? 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듯?ㅋ

상담 선생님이 그동안 괴롭고 힘든 이야기만 주로 했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좋았던 일들을 말해보자고 했는데 그때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너무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정도의 일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힘들 거라면 말이지. 근데 좋았던 일들이라.. 생각해보면 너무너무 좋은 일들이 있었다. 너무 기쁜 일들이. 근데 그것만 너무 꽉 붙잡고 살아서 힘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것밖에 없었다. 그거 말곤 없었다. 그 기쁜 일이 그냥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싫고 불안하고 내 앞에 있는 모든 게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그런 꿈도 꾸었다. 내 손을 놓치는 꿈, 날 두고 모두가 떠나버리는 꿈. 그게 불안했던 걸까.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이 내 일상에 없을까 봐? 그게 너무 나를 지배해버려서. 그때는 그냥 통돌이 세탁기에 돌려버린 것처럼 감정이 아주 마구 뒤섞였다. 지금도 아닌 건 아니지만. 후 모르겠다. 아직은. 일단은 해야 하는 걸 해야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