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먹는 송아지

잡지 만들기

쏭아지 2020. 12. 24. 20:25

 

올해가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올 한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일들도 많았지만 두 가지 프로젝트를 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잡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건 아마도 나였던 것 같다. 잡지라는 물성에 관심도 많았고 독립출판물을 언젠가 한 번 만들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여러 잡지를 구독하거나 사들이기도 한다. 막상 다 읽지는 못하지만. 문학잡지, 영화잡지 등 책과 같은 단행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글이 실려있고 다양한 사진과 그림, 디자인이 있는 잡지에 나도 모르게 끌렸던 것 같다. 인터뷰, 리뷰, 비평 등 여러 가지 형식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글들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문학이나 영화 등 콘텐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알 수 있어서 나의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어떤 담론이 오고가는지 그 트렌드를 파악해볼 수도 있다. 외국에서는 이런 독립잡지를 zine이라고 부르는데 개인 혹은 소규모의 팀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로 기존의 출판물과는 달리 참신함이 드러나서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자꾸 여러 잡지를 사게 되는 건 내가 그런 창의적인 에너지가 솟아나는 프로젝트 자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잡지가 다루는 특정 주제의 최신 동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거의 반년 간 잡지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까지 해보니 올해 처음 말로만 혹은 머릿속에만 있던 잡지라는 것이 물성을 가지고 실제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직 잡지 일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어떤 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뭐가 나오긴 나오는구나 싶다. 

고등학교 진로 수업 시간에 본인의 미래 명함을 만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순간은 미래에도 내가 이 순간을 기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게 예감인 건지 내가 주술처럼 머릿속으로 중얼거려 그 순간을 미래까지 꼭 붙들고 가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때 토마토라는 내가 즉흥적으로 떠올려 낸 이름으로 잡지사를 만들고 내가 그곳의 편집장인 것으로 상상해서 명함을 만들었다. 그 명함은 진로 선생님의 보관함에 넣었다. 지금도 담겨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명함을 만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지금 하는 생각들을 미래에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물론 어떤 큰 일이 파도처럼 나를 덮치고 지나가면 달리 생각하게 되거나 사소한 취향 같은 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을 정말 그대로 똑같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반복적으로 오래 해왔던 생각들 곧 나의 본질은 그렇게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품어왔던 생각을 현실을 이뤄내보니 더 간절해지면 간절해졌지 그걸 후회하거나 포기해버리고 싶지는 않아졌다. 그래서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한 발짝 앞으로 나가고 싶다. 생각하기에 아직은 겁이 나서 나를 더 밀어부치지는 못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그 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어쩌면 지금만이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아닐지 모른다. 앞으로 살아갈 매 순간이 그렇게 도약해야 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크리스마스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떤 바람보다 그런 용기를 달라고 산타에게 빌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