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
올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분명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올 때 신년 계획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으로 세웠는데 뒤의 계획은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이뤘다 치더라도 앞의 계획은 조금 처참할 정도로 지키지 못했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시대에 그래도 그나마 책과 관련된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내 주변의 친구들보다는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를 돌아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 쌓아둔 잡지와 책들을 매일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매번 책을 읽으려고 가방에 책을 챙겨다니거나 머리맡에 책을 항상 놓아두는데 그렇게 하면 마치 책의 내용이 자동으로 흡수되기라도 하는 줄 아는 것처럼. 그렇게 두기만 하고 실제로 읽는 일은 많지 않다. 책을 펼쳐드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워진 걸까.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잠자기 전에 여유를 즐기고 싶은 나로서는 깜깜한 방에서 아이패드를 틀고 보는 영화나 드라마는 최고의 보상이다. 책도 이북이 있긴 하지만 종이책을 읽고 싶을 때는 불을 끄고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들 수가 없어서 잘 읽지 않게 된다. 불을 켜고 보다간 한참 자고 나서 눈을 떴을 때 환한 방을 맞이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할 때가 그나마 제일 잘 읽히는 시간인데 요즘은 그 시간에 짬짬이 글을 쓰느라 아니면 그냥 넋을 놓고 주변을 쳐다보고 싶을 때가 많아 활자를 읽지 못했다. 영상 매체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나와 활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집중이 어려웠던 올해에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싶다. 고독해질수록 외로워질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코로나 때문에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잘 모르겠다. 올해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그나마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난히 올해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분명 물리적인 시간은 많았던 것 같은데 그만큼 바쁘게 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12월에는 조금 고요한 시간을 가지면서 방바닥에 쌓여 있는 수많은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가야겠다. 혼자여도 카톡이나 음악 때문에 시끄러운 시간이 많았던 나에게 올해 남은 한 달만이라도 이 소중한 시간을 선사해주고 싶다. 집중과 몰입을 필요로 하는 시간과 함께 겨울을 보내고 싶다. 책 먹는 송아지 팟캐스트를 다시 운영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