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먹는 송아지

향기에 대한 고찰

쏭아지 2020. 11. 18. 06:13



작년부터였을 것이다. 캐나다에 잠시 머물렀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커다란 몰이 하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버스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몰에 가면 나와 함께 간 친구들은 거기를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음에도 빼놓지 않고 꼭 방문했다. 바디 제품으로 유명한 Bath & Body Works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을 지나면 우리는 향기에 홀려서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거기는 꼭 들러서 구경을 하곤 했다. 그 매장에 오래 있으면 너무 강렬한 향기들에 취해 정신이 없기도 하고 후각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경험도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향기를 찾으려고 열심히 여러 제품들에 코를 들이밀었다.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할인 행사가 많았고 가판대 제일 앞에 나와 있는 제품들이 자주 바뀌어서 한 번 둘러보고 마음 속에 찜하려고 그렇게 자주 들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때 꼭 몇 가지를 사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손이나 몸을 씻고 나서 좋은 향기가 나면 기분이 생각보다 좋아진다는 걸 알았고 향기가 가져다주는 뜻밖의 기쁨에 눈뜨게 되었다. 

아마 저 브랜드를 알게 된 건 캐나다의 다른 곳을 여행하다 머물게 된 게스트하우스에서였을 것이다. 그 무렵이 크리스마스여서 그랬는지 호스트가 화장실에 비치해둔 핸드 워시 향이 진저 쿠키가 그려져 있는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였다. 약간의 계피 향도 나는 듯했고 정말 쿠키를 굽는 것 같은 냄새도 났다. 같이 간 친구와 매번 손을 씻을 때마다 너무 좋다고 말하면서 주변에 이 브랜드 매장이 있으면 꼭 사자고 다짐했다. 

Bath & Body Works에서는 내가 처음 매력에 빠진 핸드 워시 말고도 바디 크림, 바디 로션, 핸드 새니타이저, 바디 미스트, 향초 등 각종 향기 나는 것들을 판다. 그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것은 바디 크림이었다. 캐나다는 북반구 중에서도 위쪽에 위치해서 겨울이 굉장히 길고 또 매우 춥다. 그래서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는데 바디 크림이 그걸 막아주고 아주 콩알만큼만 발라도 향수처럼 향이 아주 오래간다. 씻자마자 입은 옷에는 그 다음날까지 그 향이 배어있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다. 자기 전에 씻고 나서 바디 크림을 바르면 좋은 향기를 맡으며 스르르 잠에 들 수 있다. 자장가가 아니라 자장향(?)처럼 깊은 잠으로 나를 인도하는 좋은 안내자가 된다. 

그렇게 향기의 맛을 알아버린 후 언젠가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호텔이 늘어서 있는 화려한 도시를 친구와 함께 이리저리 걷다가 귀여운 바디 제품샵을 발견했다. Nectar Bath Treats라는 곳이었는데 거기는 비누나 배스 밤 등을 케이크, 파이, 마카롱, 컵케이크 같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 두어 내 구매욕을 자극했다. 그렇게 귀엽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선물용으로 사고 나는 매장 직원분께서 손에 발라서 씻겨주시는 스크럽의 향과 부드러움에 반해버려 그 스크럽을 구매해버렸다. 딸기향을 샀는데 이제는 거의 다 썼지만 아직까지도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는 두 브랜드 모두 한국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대체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환경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LUSH가 딱 맞겠다 싶었다. 바디 제품은 사치라고만 여겼던 때에는 저렇게 비싼 걸 왜 굳이 사서까지 쓸까 싶었는데 그 매력에 빠지고 나니 몇 만원으로 행복을 오래오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쓰던 딸기 스무디 향 스크럽이 동날 위기라 새로운 오렌지 향 스크럽을 장만해주었다. 예전에 다니던 고등학교 주변에 러쉬 매장이 있었다. 그때는 어떤 것을 파는지도 몰랐고 단지 매장 밖에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게 만들어 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거품을 보면서 저기는 무슨 마술을 부리는 덴가 싶었다. 지금은 그 허무맹랑했다고 생각했던 뭉게구름 같은 거품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맛볼 수 있다는 걸 안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그게 하루의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면 삶의 전반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양초나 향수를 파는 곳을 보면 매번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으니 좋은 향기에 대한 애착은 그 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렇게 좋은 향을 내는 것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지금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알바를 할 때에는 감히 사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은 아마도 시각일 것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니까. 그래서 후각도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육체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과 닿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수적인 역할로 치부되었던 것 같다. 이런 후각에 대한 고찰을 해보면서 관찰의 ‘관(觀)’은 시각과 관련되어 있지만 후각으로도 혹은 다른 감각으로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그 예민한 후각을 만족시키는 좋은 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값진 것이 아닌가 싶다. 

비대면 시대에 접어든 이후로 비대면으로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로 감각하는 것은 직접이 아니고서는 온라인으로 하기 힘든 영역이다. 신체가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라면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신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그리고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것으로 타인과 다채롭게 소통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는 데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고. 나의 삶과 세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후각을 찾아 기쁘다. 아직까지는 눈을 뜬 상태에 불과한 것 같아 앞으로 이 감각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떻게 발굴해야 타인과 세상과 더욱 기쁘게 맞닿을 수 있을지 알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