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먹는 송아지

못다한 요리사의 꿈

쏭아지 2020. 10. 24. 21:16
비트 무 피클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저학년 때까지 요리사를 줄곧 적었었다. 3학년 문집에 들어갈 말에는 장래희망 앞에 무언가 형용사를 붙여야 했는데 그때 정확하진 않지만 ‘요리를 배고픈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는’과 비슷한 맥락의 말을 덧붙였었다. 하얀 체육복을 입고 있는 내 사진 옆에 써 있던 문구가 아직도 떠오른다.

어제 무파장이라는 육개장에서 고기 대신 무와 파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기 위해 무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다 보니 어린 시절의 꿈이 생각났다. 콩나물과 고사리는 집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넣지 못하게 되었으니 무와 파 맛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무를 잘랐다. 집에 있던 무는 생각보다 너무 커서 무를 잔뜩 넣은 무파장을 만들었는데도 반 정도의 무가 처치곤란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남은 무를 처리하기 위해 피클도 만들기로 했고 이번엔 조금 더 작은 크기로 무를 싹둑싹둑 썰었다. 무를 자르면서 오늘 하루만 하니까 망정이지 이걸 매일 한다면 손목이 아작날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파장이든 피클이든 어떤 맛이 날지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단단한 무가 잘릴 때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어렴풋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왜 하필 아주 옛날의 꿈이 떠오른걸까 생각해보았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 멀어져 버린 이야기라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꿈을.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뭐라도 하고 싶었던 나는 요리를 하는 엄마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내가 할 건 없는지 묻곤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나중에 때가 되면 하기 싫어도 하게 된다며 나중에 실컷 하라고 했다. 엄마에겐 요리가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하는 취미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가족을 먹이기 위해 하는 노동 같아서였을까. 그래도 계속 엄마를 귀찮게 하면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던 나에게 엄마는 그럼 지금은 말고 나중에 무라도 싹둑 썰기를 해보라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게 어린이에게 맡길 수 있는 정도였나 보다. 아무래도 어린이에게 불을 맡기는 것이나 칼로 무보다 작은 재료를 썰게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일 테니까. 나중에 내가 청소년 즈음 되었을 때 명절에 사촌동생들이 만두나 송편을 빚을 때 자꾸 자기들도 뭐라도 하게 해달라며 졸랐을 때 엄마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만든 무파장과 피클을 먹으며 글을 쓰고 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랍고 뿌듯한 마음이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어떤 것이 들어가는지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있으니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무파장은 먹어보니 만든 다음 바로 먹는 것보다 하루 정도 묵히고 나서 먹는 게 더 맛있다. 그래야 무나 파, 배추, 버섯, 마늘 등에서 나온 본연의 맛과 양념이 합쳐지니까.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줄 만큼의 요리 실력은 되지 않아서 초등학교 때 쓴 문구를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배고플 때 만족할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게 계속 소소하게 요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