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오늘이 한글날이어서 쉬는 날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한주를 보냈다. 새벽에 네이버에 들어갔다가 한글날을 맞아 마루 부리 글꼴 시험판을 배포한다는 소식을 보고 한글날임을 알았다. 네이버는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매년 한글날을 맞아 한글 프로젝트를 한다. 예전에 네이버 이용자들의 손글씨를 받아 글꼴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내 글씨체를 글꼴로 만들고 싶어서 설렜던 기억이 난다. 그때 글씨를 써서 스캔본을 보냈는지 그러지 않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손글씨를 쓰려고 잔뜩 폼을 잡았던 기억은 난다. 내 손글씨 정도면 글꼴로 만들어지기에 괜찮지 않을까 싶은 나름의 귀여운(?) 자만심도 있었던 것 같다.
한글은 다른 글자와 달리 모아쓰기 때문에 손글씨를 예쁘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또 균형잡히게 예쁘게 쓴다면 굉장한 매력이 살아나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한글을 쓰는 우리가 손으로 쓴 것들을 보면 그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글씨체에서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삐뚤빼뚤한 글씨, 기다랗고 꺾임이 있는 글씨, 동글동글한 글씨 같은 것들을 보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누가 봐도 누구누구 글씨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문자는 모르겠지만 또 나의 모국어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글 손글씨가 참 좋다.
그래서 편지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편지를 받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는 편지를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편지를 받는 걸 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쓴 편지가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 어떻게 닿았을지를 더 궁금해 하는 걸 보니 내가 전하고픈 마음을 편지에 적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나의 손글씨로 사각사각 써내려간 편지를 나도 받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한다는 편지 자체의 속성도 좋아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손으로 써서 건넨 물성이 있는 편지는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다. 갖다 버리지만 않으면 마음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책상 서랍, 혹은 종이 사이사이에 가장 오래 남아있기도 할 것이다.
손으로 종이에 글씨를 적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오늘이라도 한글을 손으로 적어보면서 한글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 내가 글을 쓰는 방식, 내가 종이에 글자를 적어내려가는 방식, 글자를 모아적는 방식,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이 한글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비한 기적. 잠시 한글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 한글날의 마지막을 이렇게 지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