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먹는 송아지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보이지 않는 바다를 탐험하는 서사, The OA

쏭아지 2021. 1. 18. 12:0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어요 

  중학생  독서 모임을 같이 했던 후배에게 독서 모임을 하고 나서 어떤 것이 달라졌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연히 들은 말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어떤 새로운 경험, 그러니까 이전과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될 때마다 생각나곤 한다. 

  아주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온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2016년에 파트 1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OA. 한창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하던 ,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었지만 단지 신비로운 느낌의 커버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작품의 포스터에도 비슷한 의미의 문구가 적혀 있다. 

TRUST THE UNKNOWN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을 믿어라.  

  단순하지만 강렬한  문장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포스터의 문구와 내가 줄곧 마음에 새기던 말은 보이지 않던 ,  미지의 것을 믿어야만   있게 되고 그래야만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이야기는 이렇듯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면서 보이지 않는 , 그리고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를 느낄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비로운 이야기의 줄거리를 글로 표현해낸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물질적이지 않은 것들이 실재한다는  경험하면서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내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파트 1은 프레이리라 불리던 여성이 어떻게 OA 본인을 새로이 정의하게 되었는지  시작을 담는다. 7  실종되었을 당시 눈이 보이지 않았던 프레이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시력을 되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는 동네에서 5명의 마을 사람들을 모아 매일 밤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종되었던 것인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눈은 어떻게 다시 뜨게  것인지,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야기가 전해져야 하는지를. 그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우리를 믿을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녀가 수차례 죽음을 겪고 새롭게 감각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내면의 탐험은 동시에 육체적으로 감금되어 있던 프레이리를 포함한 5명에게 그 감금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파트 1보다  신비롭고 어쩌면 난해할 수도 있는 파트 2에서는 앞선 이야기를 바탕으로  넓고 깊은 세상으로 OA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그녀는 프레이리, OA, 그리고 어렸을  이름인 니나까지 자신이 품고 있는 여러 자아를 발견하고 통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중 우주론, 보이지 않는 영혼, 그리고 내면의 성장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시리즈는 아쉽게도 제작이 중단되어 이후의 OA의 여정은 짐작 속에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파트 2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신비롭고 미스터리하고 아름다운 이 드라마의 매력을 충분히 이야기해볼 만하다.

  The OA 색다르고 매혹적인 주제만으로도 우리가 상상해보지 못했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가 뛰어난 능력의 한 명의 리더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여러 명의 주체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꾸 자신에게   없는 일이 일어나는지 혼란스러워하며  이유를 탐구하던 여성주체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같이 본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고들어 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간다. 답답하고 갇혀 있는 듯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시적인  , 외부로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깊게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는 탐험을 하는것이다. 그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여러 번의 죽음을 겪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히 영웅의 서사 구조라고 불리는 문법을 따르는  보인다.  명의 뛰어난 영웅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다시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The OA 서사는 그녀만이 완성된 퍼즐을 맞추기 위한 잃어버린 조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여럿이 있어야만, 그리고 함께 느껴야만 그녀뿐만이 아니라  집단에 속한 모두가 성장할  있다고 말한다. 병충해가 들면 연결된 네트워크로 서로를 돕는 나무처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도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글과 말로 포섭되지 않는  미지의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면 더더욱 서로의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없는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성적이고 명시적인 것만을 삶의 우선 가치로 두게끔 한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이라 명명할  없는 것들의 힘을 감각하는 존재들은 배제되고 어긋남을 느낀다. 균열을 느낀 주체들이 상징 질서로 규정되는 세계를 넘어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세계의  공간에 있는 것들을 상상하고 느껴야 한다고  이야기는 말하는 듯하다. 어느 소설[1]에서 우리는 이해할  있는 것은 이해하고  이상은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라고 말했던 것처럼. 좋은 이야기는 우리가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지금 여기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천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 너머의 곳까지 시선이 닿게 하고 따라서 소외되고 같이 고통받는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고요하게 개인의 내면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타인과 화합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가시적인 성과만을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여 갇힌 듯한 기분을 때때로 느끼는 우리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하기도한다. 이렇듯 자유롭고 목적성이 뚜렷한 여성 주체와 그녀를 돕는 사람들이 펼쳐내는 서사는 우리를  너머로 데려간다. 프레이리가 Away라는 단어에서 OA라는 새로운 이름을 발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2020년은 코로나 19 떼놓고서는 말할  없는  해가 되었다. The OA 지금 시기에 구상되고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서로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  답답하고 갇힌 기분이  요즘,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서사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깊게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들, 그리고 단절되었던 모든 것들과의 연결을 도모해야 하는  시기에 내면의 성장을 통해 자유를 찾을 수 있으며 동시에  과정에서 타인과의 공존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The OA 우리에게 던져주는 생각거리들은 특히나 유효하다. 

 

* 1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 The OA 2016 파트 1, 2019 파트 2 공개되었고,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하다. 브릿 말링·잘 배트매글리즈 각본, 브릿 말링·제이슨 아이작스·에머리 코언 출연.


[1] 데이비드 알몬드(2002), 『스켈리그』.

 

*독립잡지 OMNI에 실린 글